내마음의 풍경

한여름 마당에서 먹던 저녁밥

행복한 까시 2015. 7. 15. 08:08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의 연속이다.

요즘 같이 찌는 듯한 삼복더위가 찾아오면 어린시절 마당에서 먹던 저녁밥이 생각난다. 어린시절에는 전기불이 없어 비교적 저녁을 일찍 먹었다. 어두워지면 집안일하기가 어려워 해가 넘어가기 전에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쳐야 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저녁 먹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방보다 마당은 시원했기 때문에 저녁을 밖에서 먹는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마당에 멍석을 깔았다.

멍석이 모자라면 가마니 또는 거적(짚으로 촘촘히 발처럼 엮은 것)을 깔았다. 누나들은 상을 펴고 수저를 날랐다. 나와 동생은 집에서 키우는 개와 강아지가 오지 못하도록 망을 보아야 했다. 그러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멍석으로 오셔서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셨다. 밥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린 우리들은 멍석에 누워서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구경하였다. 지구가 자전을 하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편서풍을 타고 구름이 이동하는 것인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워서 보는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였다.


 마당에서 먹는 음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칼국수 아니면 보리와 쌀을 적당히 섞고 감자를 한두 개 얹은 밥이었다. 칼국수가 나오는 날은 어머니가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서 돗자리에서 밀어서 만든 것이었다. 칼국수를 썰고 나서 귀퉁이가 남으면 불에 구워 먹으면 고소한 맛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추억이었다. 쌀이 귀하던 그 때 어머니는 자주 칼국수를 끓였다. 담장에 열린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끓인 칼국수에 열무 겉절이를 넣어 먹으면 향긋한 열무 냄새가 입안 가득히 퍼졌다. 칼국수를 끓인 날은 감자를 찌거나, 옥수수를 쪄서 같이 먹어서 칼국수가 쉽게 소화되어 배가 꺼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밥이 나오는 날은 대부분 비빔밥을 해서 먹었다.

밥에 얹어 있는 감자를 먹은 후에 밥을 비볐다. 그 때는 냉장고가 없어 매 끼니마다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머니들의 노고가 얼마나 많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반찬은 여름에 나오는 채소를 이용하였다. 갓 따낸 호박으로 호박 나물을 만들고, 밭에서 따온 가지로는 가지나물을 만들었다. 솜털이 난 아주 작은 열무로 만든 열무겉절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이로 만든 냉국 등이 그 시절 주된 반찬 메뉴였다. 상에 올라온 여러 가지 여름 반찬을 넣고 밥을 비비면 나름대로 음식 궁합이 잘 맞아 꿀 맛 같았다. 아마도 낮에 많이 뛰어논 탓에 허기가 져서 밥맛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마당이지만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라 맛이 더 좋았을 것이다.


 상을 물리고 나면 가족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멍석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이웃 사람들도 마실을 오고, 저녁때 먹고 남은 옥수수와 감자는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었다. 이웃 사람들은 동네에 돌아가는 시시콜콜한 사건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고, 농작물의 생육, 수확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 하였다. 어린애들은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면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끝말잇기 놀이, 수수께끼 내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이렇게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면 늘 방에 와 있었다. 부모님이 자고 있는 나를 방에다 뉘인 것 같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시원했던 마당이 그리워진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시원한 우물이 그립다. 할머니의 인생경험이 가미된 옛날이야기가 그립고, 베고 놀던 할머니의 무릎이 그립다. 그리고 멀리 논바닥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그립다. 돌아갈 수 없는 날의 풍경이지만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