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엿과 겨울추억

행복한 까시 2015. 12. 4. 07:30

 

 

 날씨가 많이 춥고, 눈이 많이 오니 어린시절 추억이 더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이런 추운 날에는 예전에 고향집에서 만들어 먹던 엿 생각이 간절히 나곤 한다. 추운 날에 양지바른 행랑채의 처마 밑에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며 먹던 여러 종류의 엿 생각이 난다. 그 때 먹던 엿은 밥밑콩을 볶아서 엿과 버무려 만든 콩강정, 해마다 다르지만 어떤 해에는 땅콩을 볶아서 듬성듬성 넣어 만든 납작한 땅콩엿, 또는 그 당시 귀한 쌀을 튀겨서 엿과 버무린 쌀강정, 형편이 안 좋은 해에는 강냉이를 튀겨서 엿과 버무린 강냉이 강정 등 이었다.

 

  만드는 과정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우선 어머니는 미리 봄에 보리의 싹을 내어서 말리고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엿기름을 준비해 두신다. 이 엿기름을 물에 풀면서 엿 고는 것이 시작되는 것 같다. 엿은 주로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만드는데, 할머니는 기술자이고 어머니는 보조기술자였던 것 같다.  엿기름과 혼합해서 쓰는 곡식으로는 쌀, 수수쌀 등이 주로 쓰인 것으로 기억된다. 쌀이 귀한 시절이라 쌀하면 주로 싸래기라고 하는 부서진 쌀을 이용해서 엿을 만들었다.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곡식을 엿기름에 삭혀서 당분이 있는 물을 뽑아내서 그것을 조려야 하는데 보통은 한 이틀내지는 사흘이 걸린 것 같다. 엿을 고는 날은 엿을 먹고 싶은 마음에 부엌의 문지방에 불이 난다. 형제들이 번갈라 가며 드나들기 때문이다. “엄마 다 됐어?”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면 어머니는 “좀 나가 놀다가 오너라. 아주 오랫동안 놀다가 오너라.”그러나 밖에 나가서 조금 놀다가 보면 또 조바심이 나서 다시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또 물어 본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얼마나 정신없고 귀찮으셨나 하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진다.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력이 좋은 장작불을 많이 사용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한 생각도 들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금방이라도 녹여 없애버릴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엿을 고는 가마솥이 달려 있는 방은 절절 끓었다. 마치 요즈음의 불가마 찜질방 같다. 한지로 만든 재래식 민속 장판이 시커먼 색깔로 변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차츰 엿이 완성되어 가는데 만드는 중간 과정 중에 어머니에게서 얻어먹는 한모금의 달착지근한 국물이 그때는 꿀 맛 같았다. 아마 지금 먹는다면 그때의 그 맛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현대의 다양한 단맛과 감미료 등이 우리의 혀를 무디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엿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할머니와 어머니는 물엿과 단단한 엿으로 나눈다. 물엿을 덜어내고 더 졸여서 단단한 엿으로 만들었다.

 

  물엿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청인데, 주로 떡에 발라서 먹는 소스로 이용하거나 다식을 만들 때 사용하였다. 아주 추운겨울에 떡국용 떡인 가래떡을 화로에 구워서 조청을 발라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그만큼 조청은 가래떡하고는 궁합이 잘 맞았다. 또한 가래떡에 쑥을 넣어 만든 쑥가래떡도 맛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잔다. 그 시절 밥을 잘 먹지 않았던 나는 겨울에 이것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지금 우리 딸들도 흰 가래떡을 잘 먹는다. 덕분에 요즘도 가끔 가래떡 맛을 보고 있다. 그리고 단단한 엿은 주로 간식용이나 후식용, 손님 접대용으로 납작한 엿, 콩강정, 쌀강정을 만들어 먹었다.

 

  엿이 다 완성되면 며칠간은 참 행복했다. 맛있는 간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먹을 것이 많아도 그리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만이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 무리 중에 한사람일 것이다. 오늘은 힘겹고 각박한 생활 가운데 잠시 엿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행복감을 회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