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욕심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행복한 까시 2015. 7. 17. 07:30

 

 

 인간에게 있어 욕심의 끝은 어디 일까?

인간의 무한한 욕심 때문에 인류 문명은 발전되어져 왔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무한한 욕심 또는 욕망의 산물이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 인간의 욕심이란 것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많은 것을 이루어 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부작용들이 속출할 것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욕심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부를 많이 갖고 있는 재벌들은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금전 때문에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욕심을 조금만 줄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데, 욕심을 줄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욕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욕심 때문에 삶이 힘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욕심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집에서나 사회에서도 욕심을 줄이라고 배웠다. 욕심 없는 삶을 살라고 배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심에 대해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욕심이란 놈을 겉으로 드러내 놓지 못하고 속으로 꽁꽁 숨겨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욕심을 겉으로 들어 내 놓으면 추한 몰골이 된다. 그것을 잘 알기에 욕심을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숨겨진 욕심은 밖으로 드러내 놓은 욕심 보다는 그래도 봐줄만하다.


 나 역시 욕심이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겉으로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의 크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욕심은 자동차를 타고 멀리 앞서가고 있는데, 현실은 뒤에서 거북이처럼 엉금엄금 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욕심과 현실 사이에서 늘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사실 가정을 꾸리기 전 총각 때에는 욕심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냥 돈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 다 퍼주는 스타일이었다.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고, 가족들에게 뭐라도 한 가지 더해주지 못해 안달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 하고 나서는 양상이 달라졌다.

결혼을 하고 나니, 돈 들어 갈 곳이 많았다.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 수월찮은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둘이 생기니, 살림은 더욱 팍팍해 졌다. 그러다 보니 욕심의 크기는 더 커지는 것 같다. 핑계일지 몰라도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욕심의 크기도 자라났다. 나이가 들면 욕심이 줄어든다는데, 나이가 들수록 욕심의 크기는 더 커졌다. 아이들이 욕심이 자라는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 본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발버둥쳐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았다. 욕심만큼 수입을 얻기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다. 그런 과정 중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들도 내가 잘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내가 받는 대접들이 순전히 내가 잘해서 인정받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물론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잘해서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잘해서 그런 것 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잘한 것이 더 많았다. 선배들이 잘 키워 준적도 있고, 잘 가르쳐준 것도 있다. 지금은 후배들이 일을 잘 해주어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선배와 후배들의 도움 때문에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 동안 같이 일했던 선배들과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최근에 욕심 때문에 힘든 과정을 겪었다.

힘든 과정이라고 해봐야 조그마한 마음고생이다. 블로그에 올려진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욕심의 크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욕심의 크기만큼 현실이 따라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일종의 실망감 같은 것이었다. 항상 오르막길만 걷다가 내리막길을 걸으니 힘든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참 힘들었다.


 아직도 욕심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서 물 흐르는 대로 순응하기로 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어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물을 따라 표류하는 것이 아이고, 물의 흐름이 완만해 질 때를 기다려 적당한 시기에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욕심은 많아지는 것 같다. 할아버지들이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는 것처럼 욕심으로 가득 찬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욕심 때문에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욕심 때문에 인간미를 잃거나 정서가 메마른 사람이 되기는 싫은 것이다.


 욕심이란 놈을 잘 관리해야 할 것 같다.

너무 크게 키우지도 말고, 너무 작게 해서 나태하지 말아야겠다. 욕심의 크기만큼 사람이 발전한다는데, 욕심의 덫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면 그것도 불행한 일이다. 지금도 욕심의 크기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욕심의 크기는 얼마 정도의 크기가 적당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