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어머니 생신과 찹쌀 떡

행복한 까시 2015. 8. 28. 07:30

 

 어머니와 떡을 하러 읍내에 나왔다.

아내도 함께 동행 했다. 사실 내가 떡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따라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며칠 있으면 어머니 생신이다. 주말을 맞아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생신 때 형제들이 모이면 어머니는 떡을 하신다. 이제 떡을 그만 해도 되는데, 어머니의 고집을 말릴 수가 없다.


 “너희들이 오면 먹을 것이 없잖니? 떡이라도 먹고 가야 마음이 편하지.”


 어머니가 생신 때마다 떡을 하는 이유이다.

어머니의 생신에 어머니는 더 고달프다. 어떻게 보면 자식들의 생일인지 어머니의 생신이지 헷갈린다.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먹여 보내야 한다는 강박증이 떡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읍내로 차를 몰았다.

차 트렁크에는 떡의 재료인 찹쌀, 대추, 여러 종류의 콩들이 실려 있다. 차에 타고 가면서도 어머니는 즐거운 표정이다. 힘든 가운데서도 자식들에게 떡을 먹인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하시는 것 같다. 차안에서 어머니는 계속 말씀하신다. 그동안 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야기의 주제는 아버지와 있었던 갈등이다. 속상한 일들을 나와 아내에게 하소연 하시며 풀어 놓는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 편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길었다.

방앗간에 도착 할 때까지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방앗간에 도착하니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 전화를 하니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외식이다. 돈 아깝다고 외식을 싫어하신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순대국밥을 먹었다. 치아가 시원찮아서 드시는 것도 힘겹다. 그래도 맛있게 잡수신다. 오붓하게 어머니와 외식을 끝내고 다시 방앗간으로 돌아 왔다. 


 방앗간에 와서 조금 기다리니 주인이 왔다.

능숙한 솜씨로 떡을 만든다. 찹쌀을 기계에 넣으니 순식간에 가루로 변한다. 찹쌀가루와 콩, 대추를 버무려 시루에 넣는다. 보일러를 돌리니 떡에서 김이 올라온다. 앉아서 떡이 익기를 기다렸다.


 떡에서 나는 김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 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쌀이 귀한 시절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떡을 하려면 손이 많이 갔다. 먼저 쌀을 불려서 디딜방아에 빻아야 했다. 그리고 체로 쳐서 고운 가루로 만들었다. 그 가루를 가지고 와서 시루에 넣고 쪄야 했다. 떡이 만들어 지려면 거의 한나절 고생을 해야 했다. 지금은 기계가 다 해주니 한 시간 정도면 떡이 완성된다. 참 편한 세상이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이 다 완성되었다.

떡을 상자에 담자 어머니는 가격을 묻는다.


 “한 말에 사만원이에요.”


 어머니는 떡 값이 싸다고 하셨다.

지난번 단골집에서는 더 비싸게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상해 하셨다. 앞으로는 이집에 와서 떡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외지에서 자식들이 오면 항상 떡을 하셨다.

떡을 못하시면 찐빵이라도 만들어서 쪄 내었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떡을 하셨다. 아마도 자식들을 일찍 외지로 보내서 함께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떡으로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린시절 잘 먹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


 이제는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다.

앞으로 어머니가 몇 년 더 떡을 하실지 모르겠다. 떡을 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이 허락한다는 이야기다. 살아 계신 동안 건강하셔서 어머니가 해주는 떡을 먹고 싶다. 어머니가 떡을 하신다는 것은 어머니의 건강이 괜찮다는 증거가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