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고구마와 가난했던 어린시절

행복한 까시 2015. 10. 2. 07:30

 

 시골집에서 고구마를 가져왔다.

보라색과 분홍색을 섞어 놓은 듯한 빛깔이 난다. 색깔을 보니 먹음직스러워 군침이 돈다. 아내에게 빨리 쪄서 먹자고 재촉을 했다. 아내는 나의 말대로 신속하게 고구마를 씻어 밥솥에 넣어 찌고 있다. 햇고구마의 찌는 냄새가 거실로 퍼져 나간다. 고구마를 찌는 동안 여러 가지 고구마에 얽힌 추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먹을 것이 없던 어린 시절 고구마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나마 고구마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다섯 살 때 일인 것 같다.

고구마에 얽힌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날은 우리 집에서 고구마 캐는 날이었다. 그 때만 해도 겨울 비상식량이 고구마였다. 집집마다 고구마를 많이 심었는데, 우리 집은 500평정도 되는 밭에 심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형, 누나 둘이 고구마 캐는 것을 거들고, 나는 너무 어려서 밭에서 놀고 있었다.


 한참 놀다가 보니 출출하여 고구마 한 개를 집어서 날것으로 먹었다.

아마 어린 마음에 욕심이 많아서 큰 것으로 집은 것 같다.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한 고구마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런데 큰 고구마를 반쯤 먹다가 보니 지겨워서 가족들 몰래 논으로 버렸다.


 “너 뭐하는 짓이야.”

 “아까운 고구마를 어디다 버리는 거야. 당장 찾아오지 못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불호령은 눈에서 번갯불이 튀는 것처럼 무서웠다. 내가 고구마 버리는 광경을 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아버지는 당장 고구마를 찾아내라고 야단을 치셨다.


 그 때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넓은 논에서 어린 내가 고구마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논에 들어가 오랫동안 헤맸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 3일 동안 아버지를 피해 다닌 일이 있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는 먹는 것에 상당히 알뜰하셔서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예를 들자면 밥공기에 한 톨이라도 남아 있거나, 밥 흘린 것 주워 먹지 않거나, 과일이나, 고기를 깨끗이 발려먹지 않는다고 많이 혼내주셨다. 그렇게 야단을 많이 맞고서도 먹는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특히 흘린 것 주워 먹기는 아직도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아버지의 성격이야기를 너무 많이 노출시킨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거의 비슷했다. 워낙 힘들게 살다 보니까 절약습관이 몸에 밴 것 같다.



 고구마를 다 캐면 아버지는 고구마 저장용 발을 만들었다.

수수깡을 발로 엮어서 둥글게 하면 고구마 발이 완성되는데, 한 열 가마 분량의 고구마가 저장되었다. 주로 윗방(안방 위쪽에 방을 만들어 먹을 것도 저장하고, 우리 형제들이 침실로 이용)에 저장해 두면 우리들은 겨울에 약간 얼려 날것으로 깎아 먹기도 하고, 화롯불에 구워 먹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회로에 구워 먹는 군고구마가 가장 맛이 있다. 이 저장용 고구마가 바닥을 드러내면 신기하게도 봄이 왔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남은 고구마를 싹을 틔웠다.

고구마 싹은 잘라내도 쉴 새 없이 또 자라났다. 어머니는 그 고구마 싹을 밭에 심어 가을에 고구마를 수확했다. 이런 풍경은 70년대 중반에 들어 쌀이 넉넉해지고 나서 사라지게 되었다.


 쌀이 귀한 시절 어머니는 칼국수 하는 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고구마를 한 솥 찌셨다.

칼국수와 고구마는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칼국수를 한 그릇 비우고, 찐 고구마를 먹고 나면 속이 든든했다. 이 모두가 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이다. 고구마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가난한 시절의 행복이었다. 그나마 고구마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요즘 고구마는 많이 변신을 한 것 같다.

고구마 종류도 여러 가지 이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밤고구마에서 호박고구마, 당근고구마까지 등장했다. 호박고구마도 맛있고, 특히 당근 고구마는 날것으로 먹으니 맛있다. 당근 고구마는 꼭 단맛이 많이 나는 생밤을 먹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고구마가 다 쪄졌다.

고구마는 뜨거운 상태에서 먹어야 맛이 있다. 나는 뜨거운 것을 잘 먹는 편이다. 어린시절 형제가 많아서 그런 것이다. 뜨거운 것을 잘 먹어야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고구마에서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 햇고구마이기 때문에 신선한 맛이 더 강하다. 밤처럼 분이 나는 고구마를 먹으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