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이야기

현재의 내 모습, 과거의 상사 모습

행복한 까시 2015. 10. 23. 07:30

 

 신입사원 시절 나는 반항아 였다.

아마도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그랬던 것 같다. 더욱이 군대 같은 조직 생활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조직이 뭔지 몰랐으니 상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너무도 몰랐던 시절이기도 했다.


 반항아 기질과 조직에 대한 무지가 합쳐져서 상사가 하는 일들은 모두 부정적으로 보였다. 마치 사춘기에 부모님에 대한 반항처럼 그런 생활을 지속했다. 게다가 주위에 있는 선배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거나 나 보다 더 반항아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래서 신입 사원 시절에는 늘 불만스러운 채로 회사에 출근 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생활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빨리 회사를 그만두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 들어갔을 때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은 회장님 방문 같은 의전이었다.

회장님이 방문한다는 전갈이 오면 부장급 정도의 간부들은 모두 현관에 나가서 대기를 하였다. 부장님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회장님이 공장에 방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회장님은 바로 오시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한 시간 이상씩 기다리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도 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신입 사원인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회장님이 오신다고 해도 일을 해야 할 시간에 한 시간씩 낭비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회장님도 이 사실을 알았다면 싫어 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에 불과 했다. 그런 일들이 그 후에도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회장님이 오신다고 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현관에 나가서 기다린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니 안나갈 수 없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시간 낭비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다. 나가서 기다리다 보면 회장님이 오신다. 그러면 회장님은 흡족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회장님은 내가 생각했던 시간 낭비 보다는 직원들을 만난다는 반가움이 더 큰 것 같다. 동일한 일을 가지고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회장님 오실 때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회장님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셔서 회장님이 뜬다고 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유리창을 닦았다. 일을 하다가 청소를 하려면 짜증도 많이 났다. 그것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상사들이 너무도 싫었다. 지금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윤이 나도록 닦으라는 말은 안 해도 위에서 회장님이 뜬다고 하면 대강 정리 정돈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제출해라.’

‘늦게까지 일해라.’

‘지각하지 마라.’

‘전기 아껴라.’

‘이면지 써라.’

‘실적을 내야 한다.’

등등 잔소리를 달고 산다. 잔소리 하는 상사가 그토록 싫었는데, 그 상사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아마도 직원들은 내가 미울 것이다. 직원들이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해야 하는 역할 인 것 같다. 말을 안 해도 잘 하는데도, 노파심에서 잔소리를 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들이 공부 안하고 있으면 불안하게 느끼는 마음하고 똑같은 것이다. 직원들이 조금만 흐트러지는 것 같아도 불안한 것이 상사의 마음인 것이다.


 직장의 상사는 어려운 자리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힘든 것도 비례하는 것 같다. 직원들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이 상사의 자리이다. 직원들에게 회식 한번이라도 더 시켜 주려고 임원들 비위 맞추고 아부하는 것이 상사인 것이다. 때로는 직원의 잘못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혼자 고민하며 눈물을 삼키는 것이 상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문득 내 모습을 보고 씁쓸한 생각이 든다.

오랜 전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상사의 모습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지금 후배들도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바라볼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변명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합리화 시킬 마음조차 없다. 단지 예전의 그 상사들 보다 좀더 후배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픈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