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비와 우산에 대한 추억

행복한 까시 2016. 6. 20. 08:14

 

 

 장마비가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쉴새 없이 비를 쏟아내고 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니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러 가지 우산 색깔이 모여 한폭의 추상화를 그려내고 있다. 무슨 무늬 인지 알아내기 난해한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더 재미 있는 것은 초등학생이 쓰는 우산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쓰는 우산이 다르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의 우산을 보면 색깔이 원색적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주황색 등 색깔이 밝고 선명하다. 아이들의 취향에 맞춰 엄마들이 우산을 골라준 모양이다. 중학생들의 우산을 보면 세련되어 있다. 색상도 은은하고 디자인도 다양하다. 중학생들이 쓰는 우산은 확실히 초등학생들 보다 색상과 디자인이 은은하기는 하다. 그러나 우산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산에서 어린이 티가 난다. 중학생 자신들은 보다 디자인에서 어른스러운 것을 골랐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초등생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색상은 하늘색, 분홍색, 흰색 등으로 색상이 엷다. 우산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들의 우산은 남녀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학생들은 예쁜 우산을 드는 반면에 남학생들은 우산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어른들이 쓰는 우산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그래도 요즘아이들은 우산을 하나 고르더라도 멋지고 좋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느낌이다.


 어린시절 나는 우산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

우산 뿐만이 아니다. 연필도 잘 잃어버리고, 공책도 잘 잃어 버렸다. 누가 가지고 갔는지, 아니면 내가 잃어버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물건 간수를 잘 못했다. 특히 우산은 더 그랬다. 비오는 날 학교에 우산만 가지고 가면 잃어버렸다. 누가 쓰고 가서 잃어버리고, 하교할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놓고 왔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우산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천으로된 우산이 귀해서 비닐 우산을 많이 쓰고 다녔다. 우산이 없는 아이들은 비닐을 쓰고 등교를 했다. 할머니의 꾸중이 생각나서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우산을 챙기려고 보면 우산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 갈 때 우산 대신에 비닐을 쓰고 가기도 하고, 비닐 우산을 쓰고 가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가 멀어서 우산이 없거나 비닐을 챙기지 못하면 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비가 오면 속수 무책으로 비를 맞았다. 한시간 정도 비를 맞으면 온몸이 수영한 것처럼 다 젖어 버린다. 책가방 속의 책까지 젖어버린다. 내가 비를 맞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만 하지만 책가방이 젖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책이 젖었다가 마르면 책이 부풀어 올라 쭈글쭈글 해졌다. 그 모양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되면 책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 책이 보기 싫어서 한 학기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래서 책가방을 젖지 않게 조심 조심하지만 한 학기에 한 두 번 쯤은 꼭 큰비를 만나 책을 적셨다.


그 때도 갖고 싶은 우산이 있었지만 사달라는 소리는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어른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므로 그런 하찮은 우산에 신경쓸 여유가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 이다. 성장해서는 각종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우산이 흔하기 때문에 우산을 사 보지 못했다. 가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산이 필요하면 값싸고 튼튼해 보이는 우산을 그냥 손쉽게 살 뿐이 었다. 지금은 갖고 싶은 우산 보다도 신경쓸 것이 많고, 또 사야할 다른 것들이 많으므로 갖고 싶은 우산을 살 생각조차 못하며 살고 있다. 갖고 싶은 물건은 때에 따라 변하기만 한다. 과거에는 어떤 물건이 갖고 싶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갖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마 우산도 이런 경우일 것이다.


 우산을 보며 내 것이라는 물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 눈치 보느라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보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갖고 싶은 것 사주느라 거의 내것을 포기하고 사는 느낌이다. 내것을 가져 본 것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결혼전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가 전부 인 것 같다. 그 때가 내것을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아마도 어른들 대부분의 다들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아직도 밖에는 갖가지 우산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다른 무늬들을 만들고 있다.

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등교하는 모습과 함께 우산들이 만들어낸 무늬가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무늬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의 어린시절에는 거의 검은색 우산이 대부분이어서 비오는날 거리는 칙칙해 보이기만 했든데, 지금은 비오는날에도 우산들이 색상 때문에 거리가 밝고 화려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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