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풍경-나루터와 나룻배에 대한 추억

행복한 까시 2016. 9. 5. 20:02

 

 

  반짝이는 은빛 물결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나룻배가 있는 풍경은 정겹다.

그 풍경은 여유로운 마음과 휴식을 제공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나룻배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고향 마을 앞의 큰 강에는 나룻배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자동차 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룻배는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강 건너 마을에는 우리 동네보다 교통이 더 발달되어 그 당시에도 완행버스가 하루에 서너 차례 운행되었다. 그리고 강원도나 서울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강을 건너야 했다.


 배는 주로 버스 시간에 맞추어 운행되었다.

간간히 손님이 있으면 부정기적으로 운행되었는데, 배를 타려면 뱃사공을 불러야 했다. 가끔 나루터에서“배 건너요, 배 건너요”하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 그 소리는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배 건너요 소리가 나면 나루터에는 말끔하게 차려 입은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두서너 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우리 동네의 친인척 되는 사람들이 그중에 끼어 있기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뱃사공은 기분이 좋은 날은 금방 나와서 배를 건너 주었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한참을 기다려야 어슬렁거리며 나오곤 했다.


 

 뱃사공은 강 건너 마을에 있었다.

장씨네 집에서 했는데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며 사공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가며 배를 운행했다. 외지 사람들은 배를 타는 요금을 탈 때마다 지불했고, 동네 사람들은 타는 횟수에 상관없이 일년에 두 차례씩 쌀이나 보리쌀을 준 것으로 기억 된다. 그 당시에는 동네일을 보는 이장 집에도,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소집에도 고마움의 댓가로 돈 대신 쌀로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니 뱃사공의 입장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골치 아픈 존재이기도 했다. 타는 횟수에 상관없이 쌀로 받으니 성가신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무로 만든 기다란 배는 어른 열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삿대는 단단한 참나무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시절 삿대질을 해보고 싶어 삿대를 들면 너무 무거워서 잘 들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배를 운행하는데도 여러 가지 노하우가 필요하다. 흐르는 물이기 때문에 뱃머리를 약 30도 정도 각도로 위로 올려서 삿대를 저어서 운행하였는데, 많은 힘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배가 강 중간에 오면 맑은 강물의 수심이 깊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가끔 배에 틈이 나서 물이 새어들어 오면 알루미늄으로 만든 그릇의 일종인 양재기로 물은 퍼내기도 했다. 배에 물이 스며들어 와서 물을 퍼내는 광경은 배가 철제로 바뀐 후에 자연스럽게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나룻배와 뱃사공도 휴가는 있었다.

학생들에게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 있는 것처럼 나룻배도 겨울과 여름 한 차례씩 운행을 하지 못했다. 여름에는 홍수가 나서 물이 많이 불어나면 나룻배는 운행을 하지 못했다. 물이 너무 깊어서 삿대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는 외출 하려면 강을 건너지 않고 몇 십리를 걸어서 나들이를 했다. 그리고 겨울에는 강물이 얼어붙으면 배가 운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겨울에는 그냥 얼음 위를 건너다닐 수 있으니 여름보다도 더 편리했다.


 나루터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 기다림은 마치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은 나들이 갔다 돌아오는 아버지나 어머니도 될 수가 있고, 때로는 외할머니, 이모, 그 밖의 친척이 대상이 되었다. 어린시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외출했던 어머니가 먹을 것을 사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나와 어머니가 외출 했다 돌아올 때에는 누나와 누나 친구들이 나루터에 나와 기다렸고, 누나가 외출했다 돌아올 때에는 내가 기다렸다. 기다림이란 지루한 것이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강물에 돌을 던져 넣기도 했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다슬기를 잡거나 재첩이라고 하는 작은 조개를 잡기도 했다. 내가 기다리던 대상이 건너편 나루터에 나타나면 그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룻배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단지 마음속에 풍경으로만 자리하고 있다. 교통의 발달과 여기저기에 교량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나룻배가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도 나루터는 어린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저 멀리 배에서 손을 흔들던 어머니의 모습, 내가 배안에 있을 때 나를 기다리며 내 이름을 부르던 누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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