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어머니와 1박2일

행복한 까시 2023. 3. 5. 20:58

 오랜만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어머니는 형님이 모시기 때문에 어머니를 뵈러 가면 늘 가족들이 많았다. 또한 어머니를 뵈러 갈 때는 대부분 가족 행사나 명절이기 때문에 늘 가족들로 북적였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밥을 먹어도 밥이 입으로 들어 가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리고 5남매나 되는 우리 형제들과 조카, 조카들이 장성해서 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어머니 직계 자손만 해도 서른명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이다.

 

 형님이 제주도 여행을 갔다.

그래서 어머니가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사실 어른을 모시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여행을 가기도 힘들고, 맘 편히 외출도 못한다. 형님 내외분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형님 내외분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위해 큰 누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 펑크를 냈다. 나는 그냥 어머니나 뵙고 오려고 고향집을 방문 했는데, 뜻하지 않게 어머니와 12일을 보내게 되었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고향집으로 향했다.

칠흑같은 어둠을 뒤로한 채 차를 몰았다. 어두워도 많이 다닌 길이라 익숙하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마당에 불을 밝혀 놓으셨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즐거워하셨다. 설 때 뵈었지만 그래도 좋다고 하신다.

자식들은 언제 보아도 좋구나. 매일매일 보아도 왜 이리 좋은 줄 모르겠다.”

어머니는 그동안 있었던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주신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소식까지 전해 주신다. 어머니와 대화를 한참 나눈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는 느지막하게 눈을 떴다.

어머니가 찾는다.

얘야 전기밥솥에 밥을 안쳤는데, 밥이 안 되었네. 한번 봐라.”

자세히 보니 어머니가 취사를 누르지 않고, 보온을 누르셨다. 다시 취사를 누르고 밥을 했다. 밥은 되었는데, 질게 되었다. 아마도 보온으로 눌러 쌀이 너무 불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머니는 미안해 하신다.

아이구, 너 아니었으면 밥도 못 먹을뻔 했다. 밥이 죽이 되었으니 어쪄냐?”

괜찮아요. 어머니, 그냥 먹으면 돼요. 어머니 잡숩기는 더 나은 것 같네요.”

하며 어머니께 위로의 말을 건냈다.

 

 밥을 먹고 나서 어머니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사실 카페에 가서 근사하게 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 이었다. 어머니는 마늘밭에 가서 마늘을 꺼내야 한다고 하셨다. 그냥 양촌리 커피로 만족해야 했다. 물을 끓여서 믹스커피를 탔다. 어머니는 설탕 두 스푼을 추가 했다. 커피를 마시자마자 밭으로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니 조금 더 있다 가시라고 했더니, 잠시 텔레비전을 보신다.

 

 어머니는 완전 무장을 하고 마늘밭으로 향했다.

나는 밭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마늘을 망칠까봐 나오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온 자식이 일하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지 아무튼 밭에 나오지 말라고 하신다. 알았다고 하고 어머니 말대로 집을 지켰다. 한참을 있다가 보니 심심해진다. 텔레비전도 그저 그런 것만 나와서 재미가 없다. 집 밖으로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참 좋다. 아직 살짝 싸늘하지만 봄 햇살이 따뜻했다. 산책을 하다가 보니 내 발걸음은 어머니가 계신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밭으로 가는데, 아는 형님 집의 개가 사납게 짖어댄다.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 안면이 있는데, 짖어대는 개가 야속했다.

 

 어머니는 열심히 마늘을 꺼내고 계셨다.

손이 왜 이리 빠른지 모르겠다. 집에 있으면 숨이 차서 잘 걷지도 못하시면서 밭에 나오면 어머니는 다른 사람 같다.

집에 있지 왜 왔어. 밭에 들어오지 마라. 집에서 쉬라니까 왜 온겨?

빨리 집에 들어 가거라.”

계속해서 집에 가라고 재촉하신다. 어머니 일하시는 모습 사진 한 두컷 찍고, 어머니 성화에 다시 집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하는데, 도와드리면 어머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그냥 집으로 가자니 내 마음이 불편했다. 일단 어머니가 마음 편한 것을 택했다.

 

 점심 준비를 했다.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국수를 삶았다. 국수를 삶아 본 적이 없어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삶아졌다. 아내가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본 것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참기름과, 양념장, 고추장, 설탕을 넣고 비비니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어머니느 국수가 잘 삶아졌다고 칭찬을 해 주신다. 그러면서 맛나게 드신다. 일을 하고 오셨으니 시장했을 것이다.

내가 밥을 해 주어야 하는데, 아들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있네.”

하시며 또 미안해 하신다.

어머니는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셨다.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오면 거시기 떨어진다고 하시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변하셨다. 설거지를 해도, 국수를 삶아도 그냥 바라만 보신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못 하시니 그냥 놔두는 것이다.

 

 

 점심을 드시고 나서 낮잠을 주무신다.

밭에 가서 일을 하시니 고단하신가 보다. 그냥 집에 있어도 힘드실 연세이다.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니 작아 보였다. 젊었을 때 슈퍼 우먼이었던 어머니가 이제는 가냘픈 체구를 가진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서글퍼 진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도 잠시 눈을 붙였다. 깨어 보니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른 저녁을 어머니와 함께 했다.

날은 또다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의 배웅을 뒤로하고 어머니와의 12일이 막을 내렸다.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다. 오랫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계셨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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