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어머니의 보따리

행복한 까시 2022. 12. 22. 21:55

 가을은 분주한 계절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가을 걷이 하느라, 여행객들은 단풍 놀이로 분주하다. 우리집 어머니도 가을이 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바쁘신 분이다. 여름내 텃밭에서 키운 농산물 수확하느라 바쁘다. 수확하고 갈무리하고, 광에 차곡차곡 정리를 한다.

 

 가을이 오면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모은다.

여름 내내 손수 농사지으신 것을 나누어 주려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차례로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의 농산물을 받아 온다. 올가을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겨 고향집에 느지막하게 다녀왔다. 회사일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했고, 11월 말에는 코로나로 격리되어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빨리 내려 오지 않는다고 재촉한다.

 

 12월 중순 주말에 고향집에 들렀다.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어머니는 질문 세례를 한다.

쌀 떨어졌지? 찌어 놓았으니 가져 가거라.”

마늘은 떨어지지 않았니? 마늘 갈아 냉동시켜 놓았으니 가져 가거라.”

고추가루는 있니? 없으면 가져 가거라.”

들기름, 청국장, 서리태, , 광정(동부콩)도 가져 가거라

! , 배추, 대파도 가져가서 먹어라. 넉넉히 가져 가거라. 여기는 많이 있다.”

감도 따 놓았으니 가져 가거라. 못 먹어서 버리니까 많이 가져 가거라.”

참 늙은 호박도 있으니 가져가서 호박죽 쑤어서 먹어라.”

 

 어머니는 보따리는 끝이 없다.

광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나의 몫을 모두 내오셨다. 어머니의 보따리가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찼다. 어머니는 늘 이런 식이다. 자식들 먹이려고 힘든 몸을 이끌고 움직이신다. 이제는 그만 움직여도 좋으련만 해마다 반복된다. 예전에는 어머니에게 농사하지 마시라고 말려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이제는 자식들도 지쳐서 어머니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어머니의 고집을 누구도 꺽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라고 있다.

어머니가 농사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말리고 싶지만 말리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바라보고만 있다. 그냥 건강한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집으로 왔다.

어머니도 오랜만의 외출이다.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외출을 하지 못했다. 지난주에는 동생이 모셔가서 동생네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오래만의 외출로 어머니는 즐거워 한다. 팔십 중반의 연세라 차타는 것을 조금 힘겨워 한다. 그래도 자식집에 가는 길이라 얼굴은 즐거운 표정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거우신가 보다.

 

 어머니를 모시고 중국집에 갔다.

예전에 두 번 정도 드셨는데, 그 집 짬뽕이 맛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어머니의 단골집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짬뽕을 맛나게 드신다. 그런데 이제는 드시는 것도 힘겨워 하신다. 한해 한해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아내는 어머니께서 주신 농산물 정리를 한다.

신문지, 지퍼백, 1회용 비닐, 유리병을 동원해서 포장을 한다. 포장한 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를 한다. 그 모습을 지켜 보시던 어머니가 아내를 칭찬한다.

에미야, 난 네가 내가 준 농산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아껴 먹어서 너무 좋다.”

아내가 대답을 한다.

어머니가 힘들게 보내 준 것인데, 어떻게 함부로 해요. 이것들은 돈 주고도 못사요.

어머니의 정성 값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어요.”

하면서 웃는다.

 

 이렇게 어머니의 농사는 끝났다.

농사지은 것들이 보따리로 옮겨져 아들네 딸네 집으로 옮겨지면 어미니의 한 해 농사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내년에는 어머니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좀 쉬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봄이 되면 늘 하던 대로 들로 나가실 것이다. 십수년을 해 오신 일이라 쉽게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농사 짓는 것이 재미 있다고 하신다. 각종 농산물이 자리는 것을 보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머니의 보따리는 자식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질 좋은 농산물을 먹어서 좋지만,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안으신다. 자식들의 마음이 무거운지 모른채로 어머니는 자식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하신다. 부모와 지식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며 안쓰러워하며 챙기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가 보다.

 

고향집에서 수확한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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