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 위에는 연필꽂이가 있다.
연필꽂이에는 다양한 필기구가 자리하고 있다. 필기구를 산 적이 없는데도 많은 필기구가 꽂혀 있다. 회사에서 지급되는 볼펜부터 시작해서 선물로 받은 연필, 볼펜, 형광펜 등 다양한 필기구가 있다. 선물로 받은 필기구를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계속 쌓이고 있다. 연필꽂이가 꽉 차서 더 필기구를 꽂기가 힘들 정도이다.
업무를 하는데, 샤프펜슬이 눈에 띄었다.
매일 꽂혀 있어 무심코 지났지만, 오늘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말이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때는 연필만 쓰게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연필과 볼펜, 잉크를 묻혀 쓰는 펜을 사용하게 했다. 볼펜은 미끄러워 글씨 쓰기가 힘들었으나 잉크를 묻혀 쓰는 펜은 그나마 글씨 쓰기가 수월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펜은 불편해서 잘 쓰지 않았다. 펜으로 써오라는 숙제가 있을 때만 사용했다.
중학교 다닐 때 샤프펜슬이 등장했다.
아마도 더 먼저 나왔을지도 모른다. 시골이라 선진 문물이 뒤늦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샤프펜슬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연필을 깎지 않아도 되고, 샤프심이 가늘어서 글씨도 예쁘게 잘 써졌다. 그리고 볼펜 모양으로 디자인도 멋져 보였다.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갖고 싶었으나 우리 집 형편에는 사치였다. 그냥 막연히 나도 써 보았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다.
어느 날 작은 누나가 샤프펜슬을 사다 주었다.
그 당시 작은 누나는 시내에서 상업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누나도 용돈이 부족했을 텐데 없는 용돈에 샤프펜슬을 선물한 것이다. 아마도 중학교에 입학 했으니 써 보라고 사다 준 것 같다. 보통 샤프펜슬은 검은색이었는데, 내가 받은 샤프는 주황색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글씨도 써 보고, 샤프심도 갈아 보았다. 글씨가 너무 잘 써졌다. 필통에 넣어 놓고 보고 또 보아도 기분이 좋았다.
한 달쯤 지났다.
샤프펜슬이 내 필통에서 사라졌다. 학교에서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애지중지하던 필기구가 없어지니 화도 나고, 누나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없는 용돈에 사준 샤프펜슬을 잃어버려 누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샤프를 가져간 의심이 가는 친구가 있었다. 샤프를 가져간 용의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샤프 이야기를 하면 시선을 회피하는 친구가 있었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화가 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느 날 조회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셨다. 종이에 학용품을 잃어버린 사람은 목록을 적으라고 했고, 가져간 사람 또한 학용품의 목록을 적으라고 했다. 이렇게 적어 냈어도 사라진 샤프펜슬은 돌아 오지 않았다. 괜히 반 친구들에게 한바탕 소동만 일으킨 꼴이 되었다.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만들었다.
우리 앞집에 사는 친구도 같은 반이었는데, 그 친구도 샤프펜슬과 또 다른 필기구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필기구를 잃어버려 속상했을 것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그랬는지, 느긋한 그 친구의 성격 때문인지 나에게 이야기가 없었다. 그 친구가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도 조회 시간에 학용품 목록을 적어 냈는데, 잃어버린 학용품인지 가져간 학용품인지 표기하지 않고, 목록만 적어 냈다고 했다. 그 후로 그 친구를 대하는 담임 선생님의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마도 그 친구가 필기구를 가져간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샤프는 찾지 못하고 피해자만 만들어 낸 꼴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런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모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지금 같으면 그깟 샤프 하나 없어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쓰던 것을 훼손하거나 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선물로 받은 필기구도 다 쓰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어 물건 귀한 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촌극을 요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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