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내가 살고 싶은 집

행복한 까시 2006. 4. 4. 18:09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 큰 딸의 책상 위를 보니 그림이 한 장 놓여 있다. 큰 놈은 올해 초등 2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아마 학교에서 숙제를 내준 모양이다. 숙제의 내용은 “내가 살고 싶은 집” 인가 보다. 그림 상단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리고 집에 대한 그림과 함께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림 숙제를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웃음이 나온다. 확실히 요즘 애들은 보고 듣는 것이 많아서 예전의 우리 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다. 그림의 내용을 보면서 큰 딸의 심리 상태를 엿 볼 수가 있다. 그림 속에는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여덟 가지로 표현해 놓고 있다. 


 첫째, 청소를 안 해도 기계가 다 해준다.    

 평상시에 청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청소 걱정은 하는가 보다. 큰놈은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 어지럽히기만 하고 치우지 않아서 매일 야단을 맞는데, 아마도 야단맞기 싫어서 자동으로 청소가 되는 집에 살고 싶은가 보다.


 둘째, 어떤 때는 집을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림 속에는 딸이 집을 번쩍 들고 서 있다. 집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움직이는 집에 살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면 집을 가볍게 만들어서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만들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으니까 단독 주택도 높이 올리고 싶어서 이런 상상을 해본 것 같다.


 셋째, 늦잠자면 깨워 주는 시계가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가 보다. 자동으로 깨워 주는 시계 로봇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넷째, 날개가 있어 집이 날 수 있다.

그림 속에 있는 집에 날개를 달아 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비행기가 타고 싶어서 이런 상상을 한 것 같다. 집이 날아다닌다고 하면 땅값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날아다니다가 아무데나 내려놓으면 되니 말이다.


 다섯째, 이층 침대가 굴러다닌다.

이것은 이층 침대가 갖고 싶어서 적은 것이 틀림이 없다. 이웃집 친구 집의 이층 침대가 부러운가 보다.


 여섯째, 버튼을 누르면 날씨를 알 수 있다.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면 외출을 못하게 하고, 어디 여행 계획이 있어도 날씨가 나쁘면 못가는 경우가 많아서 날씨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일곱째, 집 주변에 사랑의 꽃을 심으면 집이 행복해 진다.

그림 속에 있는 꽃은 하트 모양으로 사랑을 표현해 놓고 행복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아마도 집 주변에 사랑이 피어나는 꽃을 심으면 저절로 집이 행복해 지는 꽃나무를 갖고 싶은가 보다. 요즘 엄마가 몸이 좋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요즘 부쩍 행복한 가정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덟째, 집 앞의 나무에서 돈이 자란다.

매일 엄마 아빠가 돈을 아껴 써야 한다고 하니까 돈을 실컷 쓰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상상을 해 본 것 같다. 그림 속에 있는 나무는 나뭇잎이 모두 돈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상이 우리 딸아이의 갖고 싶은 집에 대한 표현이다. 아이들은 참 상상을 잘하는 것 같다. 아마 어른들에게 이런 숙제를 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어린 왕자에서처럼 숫자로 몇 억짜리 집, 아니면 비싼 땅의 호화 주택, 전원주택 등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큰딸을 심하게 야단치고 나왔다. 아침에 영어 선생님이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불성실하게 받아서 많이 야단을 쳤다. 선생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전화를 끊어서 영어로는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어도 문제이지만 선생님께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비쳐질까봐 그것이 더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야단을 치고 출근 했지만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무조건 야단만 치지 말고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잘 알고 있지만 실행이 되지 않는다. 저녁에는 일찍 퇴근하여 같이 좀 놀아 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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