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황사와 대공원

행복한 까시 2006. 4. 10. 18:14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근 6개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못한 것 같다. 그동안 집사람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아이들한테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도 애정 표현에 많이 굶주려 있던 것도 사실이다. 틈만 나면 강아지 새끼처럼 나한테 파고드는 것만 보아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엄마한테 몸을 부비지 못하니 어린 아이 몸뚱이가 얼마나 근질근질 할까 짐작이 간다.


 이런 마음을 달래주려고 우리는 집사람의 치료가 끝나는 이번 주말에 아이들을 어린이 대공원에 데리고 가기로 계획했다. 이 계획을 아이들에게 알리니 아이들을 무척이나 들떠 있다. 발표 19일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 이제 열다섯 밤 남았다. 또 며칠이 지나면 이제 열 밤 남았다. 또 며칠이 지나면 이제 다섯 밤 남았다며 두 자매가 손을 꼽아가며 기다려 왔다. 


 드디어 금요일이 왔다. 이번 주는 다행이도 토요일이 쉬는 날이라 금요일 밤에 서울로 출발했다. 서울로 가는 도중에도 두 딸들은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들떠서 잠도 자지 않고 재잘거린다. 드디어 서울 누나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조카들이랑 즐거워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뛰어논다. 누나와 매형도 아이들의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공원 가기로 정한 토요일이 되었다. 누나는 아침 일찍부터 김밥 준비에 바쁘다. 여러 가지 나물을 준비하고, 김밥을 싼다. 김밥의 참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히 풍겨 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부터 약한 황사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열한시가 넘으면서 황사가 더욱 심해진다. 일기예보에서는 오전에만 황사가 있을 것이라 예보했는데, 황사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이제나 저제나 황사가 걷히기를 기다리는데, 황사는 얄궂게도 점점 더 심해져만 간다. 아이들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만 간다.


 오후에 뉴스를 들으니 황사 경보란다. 황사 때문에 못나간다고 아이들을 설득해 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하긴 이날을 위해 19일이나 기다려 왔는데, 쉽게 설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원망이 기상청으로 향한다. 황사가 오후에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더 심해지니 기상청은 거짓말쟁이라는 등 기상청에 분풀이를 한다. 아마 기상청도 그날 많은 곤혹을 치렀으리라 짐작이 된다. 점심에는 아침에 싸놓은 김밥으로 해결하고, 아이들을 위해 특별식(아이들은 라면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라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잘 끓여주지 않으니 아이들에게는 특별식이 되었다. 가끔 우리 부부가 협상카드로 사용하는 것이다.)을 해 주었다. 오늘은 그 특별식도 약발이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수위를 더 올려서 저녁에는 딸들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것으로 놀이 공원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 하였다.


일찌감치 집을 나와 국수를 먹으러 갔다. 저녁에도 황사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다. 모두들 해물로 끓인 국수를 맛있게 먹고 노래방으로 향한다. 노래방에 풀어 놓으니 우리 딸들 독무대이다. 동요에서 가요까지 딸들만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 다른 가족들도 노래를 하라고 하니 안 부른다. 할 수 없이 우리 가족만 전세 낸 것처럼 노래를 한다.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가족들도 노래하라고 입력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큰딸이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계속 입을 내밀고 있다. 속으로 화가 나는 것을 분위기 때문에 화도 못내고 꾹 참고 있었다. 노래방이 파할 때까지 큰 딸은 계속 화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작은 딸은 계속 독무대이다. 낭낭한 목소리로 쉬지 않고 노래도 잘 부른다. 나는 노래를 못하는 편인데, 나를 닮지 않은 것 같다. 다 끝나고 나오니 노래방 주인아주머니가 묻는다. 노래한 꼬마가 누구냐고 말이다. 노래방 아주머니가 예쁘기도 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고 접대용 맨트를 한다. 빤한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기분은 좋다. 이렇게 해서 대공원 가기로 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괜히 아이들에게 허무감만 안겨준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다음주에는 동네 가까운 동물원이라도 데려가야 할 것 같다.               

'딸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가와 휴식(2)  (0) 2006.08.07
땅콩  (0) 2006.06.13
내가 살고 싶은 집  (0) 2006.04.04
우동 먹고 싶어  (0) 2006.03.14
더러워진 냇물  (0) 2006.02.26